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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상

2024년의 영상/게임/공연/책

by boida 2025. 1. 21.

 
뒤늦은 2024년 결산입니다. 2024년은 본 것이 많지 않아 큰 지표가 되지는 않겠습니다만 추천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2024년 올해의 영상 : 키타로의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 원작 미즈키 시게루, 감독 코가 고
 
방향성은 다르지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보았을 때와 비견할 만한 경이감과 감동이었습니다. 요괴 만화로도 추리 만화로도 손색없습니다.
미즈키 만화 기법 그대로, 인물화는 가볍게 그리고 자연과 풍광은 실사에 가깝게 그리는 화풍이 압도되는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미즈키라는 이름의 인물이 등장하고, 원작자 미즈키 본인이 겪었던 태평양 전쟁의 참상을 교차 진행하여, 요괴나 다름없는 인간상, 전쟁의 수탈과 학살을 고스란히 연상시키는 전개가 숨 쉴 틈 없이 계속됩니다. 원작자 본인이 겪은 실화의 박력도 큽니다.
아무리 구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세상이라도 갓 태어난 한 아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이므로, 목숨과 가진 것을 다 희생해 지켜나가는 어른들을 보여줍니다. 세상이 지킬 만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썩고 망가졌어도 아이들을 위해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올해의 게임 : 베리드 스타즈 / 시나리오 수일배, 팀 라르고
 
뒤늦게 했습니다. 늘 명작만 만드시는 수일배 디렉터의 또 다른 명작입니다. 단순한 클로즈드 서클 추리인 줄 알고 열었다가, 게임의 중심이 트위터 조리돌림과 신상털이, 사이버불링인 것을 알고 놀라 몰입해서 했습니다. 무려 첫 엔딩이 주인공이 트위터 보다가 멘탈 부서져서 자살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작품도 그랬지만 후반부에 추리가 연이어 몰아치는 순간은 장관입니다.
서바이벌 오디션 최종 5인이 생방송 하던 중 불법 증축한 건물이 붕괴하고, 연예인 5인과 스탭 한 명이 무너진 건물 아래 고립되는 가운데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이들의 상황은 페이터(트위터+페이스북)로 실시간 중계됩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가운데 인기투표도 계속되고 안티와 팬들의 신상 캐기 경쟁이 벌어지며 모두의 과거가 낱낱이 드러나며, ‘죽어도 싸다’는 지경에 이르도록 5인을 저격하는 트롤과 이를 막는 조력자 키보드 워리어가 합세합니다.
제작사에서 팀을 해체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어떤 명작도 결국 도박성 게임의 수익을 따라갈 수 없다면, 수익만으로 게임을 평가한다면 세상에는 도박성 게임만 남게 됩니다. 도박은 중독자는 만들어도 사랑받지는 못해요. 도박성 게임만 남는 업계는 언젠가는, 어쩌면 이미 슬슬… 외면받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수일배 디렉터께서 새로 옮겨간 곳에서는 부디 마음껏 창작하실 수 있기를.
 

 
올해의 게임 2 :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 SOMI
 
아마도 아이큐 테스트에도 있을…… “대화 내용을 순서대로 정렬하시오” + “이 말을 누가 하는 말인지 맞추시오” 두 가지만 할 수 있으면 진행할 수 있는 게임인데, 바로 그것이 추리와 반전의 요소라는 점이 훌륭합니다. 처음에 당연히 이 사람의 말이겠거니 하고 이어나가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계속 깨닫게 됩니다. 악의로 여겨졌던 태도나 말들이 실은 선의였다는 것이 계속 밝혀져 나가는 전개가 내내 감동입니다.
 

 
올해의 공연 :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
 
신비체험 같았던 공연이었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시위 현장에서 살아오면 저렇게 후광이 비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송창식 정훈희 함춘호 콘서트에서도 느꼈지만, 평생을 노래하고 경지에 이른 분들의 공연은 죽기 전에는 하나씩 보아야겠구나 생각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진에 19년이라고 쓰여 있는데 24년에 본 이유는 코로나로 취소된 울산 공연을 뒤늦게 해서입니다)

 

 
올해의 책 : 인셀 테러 / 로라 베이츠 지음, 성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언제부터인가 강의실에서, 똑같은 틀린 자료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하는 남자아이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하는 책. 다수의 젊은이들이 가짜 데이터와 거짓 정보에 근거한 대안현실을 철썩같이 믿게 되었고, 이 음모론과 대안현실에 근거한 여성혐오(소수자혐오를 포함하여) 현상을 우파 정치인들이 이용하거나 장려하는 것으로 권력과 지위를 얻기 시작하면서 대안현실은 점점 세를 불리고 혐오는 강고해집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의 특수한 역사나 문화에 근거한 일이 아니라는 것, 지금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면서 사안을 좀더 분명하게 보게 해 주는 책입니다. 극우 자본, 혐오 자본이 퍼져나가는 인터넷의 원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총기가 있는 나라에서 극우화가 어느 수준의 무차별 대량 살상을 야기하는가도 보여주는데, 지금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나 다름없는 살상의 규모에 현실감을 잃고 맙니다. 이 정도 규모의 학살이 ‘평범한 일’로 치부되는 현상마저도 경각심을 줍니다.
하지만 수백만의 추종자를 거느리며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혐오장사꾼도, 단순히 플랫폼에서 퇴출되거나 처벌받기만 하면 한순간에 지위를 잃는다는 분석을 읽다 보면, 어리석은 한국 기업들이 그들에게 동조하고 굴복하며 세를 불려놓은 결과가 지금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의 문구 : “살아라. 그대는 한 표다.”
 
깃발을 만들고 싶은 문구입니다. 그대는 한 명의 유권자고 한 표의 투표권을 가진 주권자입니다. 지치지 말고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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