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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식/작품-활동(해외)

[불말이 울던 날] 소설 전문

by boida 202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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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말이 울던 날’은 중국 미래사무관리국(未來事務管理局)의 의뢰로, 2026년 춘절(설날) 갈라에 참여한 작품입니다. 2026년 불말띠 설날을 기념하여, ‘춘절(설날)’, ‘말’, ‘여성’의 키워드로 썼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5개국 작가 13인이 참여했으며, 처음으로 모두 여성 작가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작품 전체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저도, 한국 독자도 이번 갈라 작품들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사무관리국 갈라 이벤트에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8년 ‘니엔(年)이 오는 날’로 참여한 바 있으며, 당시의 키워드는 ‘춘절’과 ‘서베이징역’이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독자가 읽으리라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미래사무관리국은 전 운영진이 여성인 중국 SF 에이전시로, 2017년 환상문학웹진 거울과 작품 교환 이벤트로 중국의 SF를 한국에 알린 바 있으며, 최근 김초엽 , 저우원 , 김청귤 , 청징보 , 천선란 , 왕칸위 글 · 김이삭 번역의 [다시 몸으로]를 래빗홀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니엔(年)이 오는 날’에도 좋은 말씀을 주신 한쑹 작가님께서 이번에도 친절한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중국 최고의 SF 작가중 하나라는 한쑹 작가님의 책도 한국에서 많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감상을 남겨 주신 청징보 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관련 뉴스 :
https://kr.news.cn/20260228/a48ccb4b95464904bac40409988b2634/c.html

中 2026년 'SF 춘완' 행사 열려...SF 문학, 중·한 문화 협력의 새로운 장르로 떠올라-Xinhua

[신화망 서울 2월28일] '말의 해'를 맞아 중국 공상과학(SF) 문화기관인 미래사무관리국이 주최한 2026년 'SF 춘완(春晚, 춘절 특집 프로그램)' 행사가 열렸다. 중국,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5개

kr.news.cn

 
https://www.newsiesport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80

“말의 해 달린다”… 한·중 여성 SF 작가 13인, 상상력으로 춘절을 잇다 - 뉴스아이이에스(news ies

‘말의 해’를 맞아 중국 공상과학(SF) 문화기관 미래사무관리국이 주최한 2026년 ‘SF 춘완(春晚)’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중국 춘절 특집 프로그램 형식을 차용한 SF 릴

www.newsi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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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말이 울던 날

김보영(金寶英)
 
 
 
 
“임진년(선조 25년, 1592) 4월 13일, 왜병이 국경을 침범해 부산포가 함락되었다(四月十三日,倭兵犯境,陷釜山浦).”
(『징비록懲毖錄』 중에서, 류성룡柳成龍))
 

 
  화마(火馬)가 주인에게 물었다.
  ― 너는 알고 있었는가.
 

 
  산이 솟으며 불을 뿜었다. 용솟음 속에서 벌건 말이 튀어나왔다. 말이 울자 천지가 뒤흔들렸다. 말의 발굽은 달군 쇠처럼 뜨거웠고 땀은 피처럼 붉었다. 갈기와 꼬리는 이글거리는 화염이었고 눈은 달아오른 숯불색이었다.
화마(火馬)는 눈을 뜨자마자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화산을 질주해 내려갔다. 발굽이 땅을 디딜 때마다 불꽃이 튀고 흙이 그슬렸다. 지나간 자리마다 초목이 말라 시들었다. 말이 속도를 늦추며 어슬렁거리면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에서 재가 눈처럼 내렸다. 섬 전역에 사는 야생마들이 화산 주위에 모여들어 새 신마(神馬)의 탄생을 경배했다. 화마가 해안가를 질주하니 파도 물거품 속에 사는 하얀 해마(海馬) 무리가 함께 몰려갔다. 구름 속에서는 이 나라 인간 시조들이 태어난 알을 품었던 천마(天馬)들이 함께 흘러갔다.
  불타는 말은 징조다. 말은 나면서부터 제 천명을 알았다. 말은 전란을 알리러 왔다. 이 나라는 곧 불구덩이가 된다. 해풍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 군대가 대지를 유린할 것이다.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사찰은 불타며 유적은 부서지고 무덤은 도굴될 것이다. 그러나 흉조는 한편으로 숨은 길조라, 이 땅의 인간 중 누구든 한 명이라도 그녀를 길들일 수 있다면 나라의 앞날은 뒤바뀔 것이다. 화마의 불길은 국경을 지키는 성벽이 될 것이며, 침입한 적을 남김없이 태워 없앨 것이다. 화염이 적의 선단을 침몰시키고 진지를 무너뜨릴 것이다. 군마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진군하여 적을 낙엽처럼 쓸어버릴 것이다. 화마의 주인은 불굴의 장군이나 군왕이 될 것이다. 화마는 그 운명을 기대하는 한편 비웃는다. 그녀는 길들지 않는다. 불은 다스릴 수 없으니, 나라의 운명도 이미 정해진 것이다.
  화마는 은빛 파도로 뛰어들었다. 해마 무리가 화마를 실어 날랐다. 말은 물거품을 타고 섬을 떠나 반도로 향했다. 달 밝은 밤 화마가 해안가에 이르자 물이 끓고 고깃배들이 불에 휩싸였다. 물고기들이 익어 수면에 배를 내놓고 떠올랐다. 어부들이 놀라 흩어져 이 확연한 흉조를 내륙에 전했다.
 
  질주하던 화마가 지리산 자락에 이르자 한양에서 온 관군도 이르렀다. 군졸들은 십 리 밖에서부터 울타리를 쳐 말을 에워쌌다. 거기서부터 안쪽으로 1리마다 새 울타리를 세워 좁혀가다 5리 지름의 쇠 울타리를 쳤다. 화마는 종일 울타리 안을 질주했다. 주변 일대가 옹기 가마처럼 달아올랐다. 산짐승들이 더위에 숨이 막혀 픽픽 쓰러지고, 주변 민가에는 하루걸러 크고 작은 불이 났다. 풀나무는 버석버석 말랐고 일대는 모래 황야가 되었다.
  사무(師巫)가 화마의 계시를 왕에게 알리자, 전국에서 짐승을 길들이려는 장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가족과 구경꾼들, 장사치들도 모여들어 황야가 군중으로 북적였다.
  벌거벗은 우락부락한 장수들이 몸에 물을 끼얹고 기세 좋게 화마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내 차례차례 화상을 입거나 어디 한 군데 부러져 초라한 꼴로 물러났다. 어느 날은 장정 열이 달려들어 화마에게 쇠사슬을 던져 묶으려 했다. 거의 성공하는 듯싶었으나 쇠사슬이 녹으며 끊어져 모두 나자빠졌고, 넘어진 장정들은 화마의 발굽에 짓밟혔다. 그 후 화마는 쇠사슬을 철그렁거리며 다니게 되었고 그 모습이 기괴함을 더했다. 한번은 어느 장군이 군마를 끌고 와서 포위 작전을 펴 보았지만, 말들이 모두 겁에 질려 펄쩍펄쩍 뛰며 도망치는 바람에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한번은 한양에서부터 왕이 행차해 장수들의 도전을 지켜보았다. 그는 초열지옥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밭에서 부채질하는 시동들로 둘러싸여 화마를 보았다. 화마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비는 씩씩한 장정들을 하나씩 땅에 내팽개치며 왕을 보았다. 왕은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왕은 누군가 자기 대신 성공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제가 가져야 할 민중의 칭송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장수가 화마의 이글거리는 말잔등에 올라타 잠시나마 균형을 잡기라도 하면, 의자 손잡이를 꾹 쥐며 몸이 뻣뻣해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간혹 못난 것들이라고 호통치다가는 도로 화들짝 겁에 질렸다. 왕은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수를 여럿 잃고도 안도 속에서 떠났다. 화마는 그 뒷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동안 화마는 한 아이를 눈여겨본다. 매일 제 몸만 한 수레를 끌고 와서 쇠 울타리 한구석에 놓인 쇠 여물통에 여물을 한가득 붓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아이다. 북방의 산악지대에서 외적을 피해 내려온 한 마구간지기 부부의 딸이다. 이 나라에서는 여자에게 이름을 잘 붙이지 않고 누구의 여식, 아내, 며늘아기로 부르지만, 그 부모가 딸을 몹시 귀여워하여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우투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투리는 몸집이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지다. 터질 듯이 통통한 뺨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다. 눈은 작지만 사나울만치 또렷하며, 앙다문 입은 똑부러져 보인다. 부모는 매일 장정들이 타고 온 말을 먹일 여물을 끓이고, 아이는 그중 한 통을 수레에 실어 와 화마에게 준다. 화마는 배가 고프지 않지만 간혹 그 맛을 즐긴다.
  화마는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아이의 눈에 담긴 동경을 읽는다. 아이는 나무꼭대기에 올라가서, 혹은 지붕에 올라타서는 장수들이 화마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지치지 않고 본다. 아이는 한 번도 장수들에게 눈을 둔 적이 없다. 화마의 갈기가 이글거리며 타는 모습을, 터질 듯한 새빨간 근육의 움직임을, 발굽이 힘차게 땅을 차는 광경을 넋놓고 본다.
  화마는 우투리가 아무도 보지 않는 달밤, 비루먹은 노새를 타고 제가 만든 작은 박달나무 활로 토끼를 사냥하는 모습을 본다. 늙은 노새는 늘 마구간 한구석에 매여 누워 빌빌거리지만, 우투리가 짧은 다리로 올라타 박차를 가하기만 하면 펄펄 뛰는 준마로 변한다. 우투리는 등자에 한 발을 올려놓고 다른 다리로는 노새 허리를 팔로 안듯 움켜쥔 채, 노새가 다치지 않도록 몸을 옆으로 크게 빼거나 등을 뒤로 젖혀 활을 쏜다. 화살은 수리매처럼 공기를 찢고, 풀숲을 헤치고 달리던 토끼의 목을 정확히 꿰뚫는다. 아이는 화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새벽녘에 아이는 토끼 너댓 마리의 귀를 묶어 한 손에 쥐고는 질질 끌고 집에 돌아간다. 새벽 나절에는 마부네 집 굴뚝에서 토끼고기로 만든 국 끓는 냄새가 향긋하게 피어난다. 남편이 가죽을 벗겨내면 아내가 옷을 지어 장정들에게 판다. 부부는 여식이 어찌나 귀여운지 길거리 어디서든 쓰다듬으며 끌어안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화마는 왜 우투리가 자기에게 도전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화마는 아이의 달아오른 마음을 본다. 그것은 열정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다. 아이는 화마를 원한다. 첫사랑처럼 열망한다. 그런데 왜 남들처럼 내 등으로 뛰어들지 않는 걸까? 겁이 나서? 내 말발굽에 짓밟힐까 봐? 추락해 목이 부러질까 봐? 내 불길에 타서 재가 될까 봐?
  화마는 어느 달밤, 어김없이 토끼를 사냥해 집에 돌아가는 우투리에게 다가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그 옆을 따라 걸었다. 아이가 속도를 늦추면 늦추고, 뛰면 뛰었다. 아이는 화마의 시선을 느끼고 멈춰서서 말을 올려다보았다. 달밤에 화염 같은 갈기가 타오른다. 화마의 머리 위로 재가 불비처럼 쏟아진다.
 
  ― 내가 탐나지 않는가?
 
  화마는 달군 숯불색 눈으로 아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 무엇이 두려운가? 아이야, 죽음이 두려운가? 내 불길이 네 작은 몸을 전부 태울까 봐? 아니면 그 반대인가? 네가 누릴 위세가 두려운가? 세상을 호령하며 이름을 떨칠 운명이 무서운가? 큰 운명이 네 작고 소중한 행복을 삼킬까 봐? 하지만 네가 도전하지 않아 이 땅이 불구덩이가 되고, 네 사랑하는 가족도 잿더미 속에 사라질 것은 두렵지 않은가?
 
  화마의 언어는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왠지 알아들은 기색으로 말을 빤히 보았다. 알아들었으나 반응하지 않는다. 우투리는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밤새 아궁이에 따듯하게 불을 때며 기다리던 부모가 환히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여보냈다.
  마침내 더는 화마에게 도전하려는 이가 나서지 않게 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용감한 젊은이들은 하나둘 죽어 묻히나 부상자가 되어 돌아갔다. 마을에 크고 작은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구름처럼 모여든 장정들도 흩어지고, 그들을 보러 온 구경꾼들도, 구경꾼들에게 모여든 장사치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왕의 명으로 울타리를 지키는 관군 몇과 마부 가족만 남았다. 화마는 더 기대하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화산처럼 타고만 있었다. 치솟은 재가 안개처럼 자욱해 일대는 까맣고 끈적끈적했다.
 
  어느 새벽, 일출과 함께 우투리가 왔다. 노을에 물들어 땅은 온통 붉은빛이었다.
  웃통을 벗은 채 잘 타지 않는 대마로 짠 두꺼운 바지를 입고, 손에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불붙기 쉬운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고 왔다. 양 옆구리에는 토끼 가죽을 여러 겹 무두질해 짠 안장과, 여러 겹 바느질해 만든 입마개와 고삐를 끼고 왔다. 화마는 아이가 저것들을 손수 짜느라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마는 기대감으로 웃었다.
  우투리는 마구를 지고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를 올랐다. 화마는 울타리를 따라 질주했다. 쇠 울타리가 달아올랐다. 진동하는 화마의 말발굽에 버석버석 마른 나무들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쇠기둥에 떨어진 낙엽이 불꽃의 비가 되었다. 우투리는 불비 속에서 화마의 질주를 지켜보다가, 안장을 아래로 하여 새처럼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가죽 안장을 말의 등에 덮는 자세로 착지한 우투리는 번개처럼 자세를 잡아 올라앉고는 말의 입에 마개를 끼우고 고삐를 틀어쥐었다. 아이의 다리가 화마 허리의 잘록한 부분에 녹아들듯이 감싸안았다. 낮은 몸 중심이 말의 중심에 겹쳐졌다. 화마는 아이가 제 몸에 스며드는 기분에 소스라쳤다. 태풍처럼 질주하던 말이 돌연 발걸음을 늦추며 방향을 안쪽으로 틀었는데, 그런 뒤에야 방금의 움직임이 제 의지가 아닌 줄을 깨달았다. 우투리가 말의 한쪽 허리 근육을 꾸욱 누르고 고삐로 목 근육을 당겨 방향을 트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길을 바꾼 것이었다.
  화마는 핏기가 가셨다. 포효하며 목을 흔들고 뒷다리를 높이 차올리며 날뛰었다. 입마개와 고삐가 멀리 날아갔고 우투리의 작은 몸이 등에서 날아올랐다.
  아이는 모래밭에서 작은 공처럼 여러 바퀴 구른 뒤 곧바로 일어났다. 생기 하나 잃지 않은 눈으로 날뛰는 화마를 응시했다. 아이는 화마와 함께 바람처럼 달렸다. 말이 울타리를 달리며 그리는 원보다 더 작은 원을 그리다가 차츰 가까워졌다. 그러다 스며들듯이 경로에 뛰어들어 안장을 잡고 매달렸다. 깃발처럼 휘날리면서도 놓지 않았다. 장갑에 불이 붙어 팔까지 그슬릴 즈음 아이는 말잔등에 올라타며 장갑을 내버리고 갈기를 맨손으로 틀어쥐었다. 금빛 불꽃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튀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는 말과 하나가 되었다.
  화마는 날뛰었지만 이미 무엇을 떨구려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등에 새로 돋은 혹을 떨쳐내려 애쓰는 기분이었다. 화마는 전에 없이 공포에 휩싸여 울타리로 돌진했다. 쇠 울타리를 차례로 머리로 들이받아 무너뜨렸다. 몸이 크게 흔들리며 충격이 왔지만 등에 탄 아이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마는 체통도 잊고 정신없이 질주했다. 곡소리를 내며 산자락을 온통 불길로 만들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강물이 화마의 발굽 아래에서 온천처럼 끓었다.
  어느덧 화마는 제 의지로 달리고 있지 않았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었고 방향을 틀려 해도 틀 수가 없었다. 기수가 이끄는 대로 움직일 도리밖에 없었다.
  해가 기울고 밤이 왔다. 화마는 결국 등에 탄 아이가 박차를 멈추기 전에는 멈출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면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말은 어느 순간 아이가 워, 워, 하며 갈기를 당기자 순순히 멈췄다.
  하루 밤낮의 질주였다. 우투리는 화마에 탄 채 지리산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불길처럼 솟아 산야를 잘 익은 감처럼 붉게 물들였다. 아이는 벌거벗고 그슬렸지만 건강했다. 땀에 젖은 채 고양감으로 웃었다. 화마는 허덕이며 아이와 함께 일출을 보았다. 갈기에서 이글거리던 화염이 식었다. 털이 젖은 듯 축 늘어지자 땅에 불똥이 뚝뚝 떨어졌다. 달군 쇠 같던 몸도 귀한 주인을 다치지 않게 하느라 다소 식었다. 피처럼 붉은 땀이 불똥과 함께 떨어졌다.
  화마는 잠시 치욕에 떨었으나 이내 자조적으로 웃었다. 말은 바뀐 천명을 받아들였다. 나라의 운명은 길을 틀었다. 화마는 이 땅 대신 적의 진지를 불태우리라. 주인의 지휘를 따라 적을 짓밟으리라. 우투리가 살아 숨 쉬는 한, 화마는 그 곁에서 이 나라와 민중의 수호신이 될 것이다. 이 땅은 이제 누구에게도 침략받는 일이 없으리라.
 

*

 
  “임진년 4월 13일, 왜병이 국경을 침범해 부산포가 함락되었다.”
 

*

 
  산야는 시체로 덮여 있었다. 적들은 죽인 수만큼 제 땅에 돌아가 월급을 받기 위해 시체의 귀와 코를 베어냈기에 하나같이 얼굴이 망가져 있다. 그 위로 까마귀 떼가 덮어 살을 뜯었고 짐승들이 부패한 내장을 탐했다.
화마는 시체 사이를 절룩이며 걸었다. 말의 외양은 마치 불에 타 숯이 된 나무 인형 같았다. 털과 갈기는 다 타 없어졌고 붉게 빛나던 피부는 검은 목탄처럼 버석거렸다. 무릎뼈와 갈비뼈는 다 드러났고, 뺨은 뜯겨나갔고 눈은 뻥 뚫린 구멍뿐이다.
화마는 죽은 듯이 걸었다. 잿더미가 된 마을과 피로 물든 강을 지났다. 도굴된 무덤과 내려앉은 사찰을 지났다. 말은 간혹 귀신처럼 서럽게 울었다.
  말은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산속 으슥한 곳에 자리한 작은 바위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 주위로는 콩, 팥, 조가 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어린 죽음을 불쌍히 여겨, 저승에서나마 배불리 먹으라고 뿌려준 것이다.
우투리의 목숨은 부모가 빼앗았다.
  아이를 그토록 사랑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워했던 부모가 맷돌로 머리를 짓눌러 죽였다.
사람들은 화마를 타고 산을 내려온 우투리를 아기장수라 불렀다. 마치 등에 날개를 단 사람처럼 보였다고도 했다.
그러자 왕이 역적이라며 군대를 내려보냈다. 이해할 수 없게도 왕은 두려워하는 대신 치욕에 떨었다. 아이에게 붙은 여러 죄목 중에 가장 초라하고도 기이한 것은, 이런 드센 여자는 크면 남편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울며 아이의 머리를 눌렀다. 역적이 되면 3족이 몰살될 것이었다. 우투리는 조용히 죽었다. 부모가 아이의 시신을 보여주자 장군은 왕의 백성으로서 훌륭한 일을 했다며 치하했다.
  관군은 한양에 이르기 전에 왜병을 만나 죽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왕에게 보고하러 궁에 이르렀지만, 왕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왕이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것에 분노한 민중이 스스로 궁을 불태웠다. 한양을 다 태운 불길은 비가 와도 며칠이고 꺼지지 않았다.
화마는 제 주인이 묻힌 바위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불현듯 제가 짐승인 것을 서러워했다. 말은 짐승이었기에 인간의 광기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우투리가 왜 자신을 손에 넣기를 망설였는지 짐작조차 못했다.
화마가 눈을 들어보니 혼령이 된 우투리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말이 주인에게 물었다.
 
  ― 너는 이리될 줄을 알고 있었는가,
 
  우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왜.
 
  화마가 재차 물었다.
 
  ― 내가 알았더라면, 알기만 했더라면,
 
  우투리의 작은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사과처럼 익은 뺨이 발그레 부풀었다. 아이는 태양처럼 환히 웃었다. 그날, 화마가 주인과 함께 보았던 그 불덩이 같은 일출처럼.
  우투리가 화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은 목을 숙여 아이의 손에 뺨을 대었다. 아이가 해골만 남은 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슬리고 구멍이 숭숭 난 갈비뼈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손을 오그려 그 몸을 꾹 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끌어안듯이.
  우투리가 말의 뺨에 얼굴을 묻고 환희 속에서 속삭인다.
 
  ―아아, 너는 내 것이다.
 
  바위 주변에 뿌려진 팥과 콩에서 싹이 돋아났다. 싹이 가지를 펴며 자라났다. 가지 끝이 손가락처럼 갈라졌다. 피부가 생겨나고 손톱이 자랐다. 곡식 알갱이 하나하나가 장정으로 자라났다. 전란에 죽은 병사들이 깨어났다.
  화마는 주인이 등에 타기 쉽도록 몸을 수그렸다. 우투리가 말에 훌쩍 올라타 앉았다. 말은 앞다리를 높이 쳐들고 울었다. 갈기가 자라나며 햇살처럼 금빛으로 일렁이는 불길이 되었다. 피처럼 붉은 새살이 돋아나고 숯불처럼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돌아왔다. 쇠 같은 발굽이 땅을 딛자 발굽에서 불꽃이 튀며 땅이 그슬렸다.
  화마는 우렁찬 울음소리로 새 화염 신장(神將)의 진격을 알렸다. 화마가 발걸음을 떼자 군대가 함성과 함께 뒤를 따랐다.
  군대가 태양을 향해 진군했다. 불길이었다.
 
 
 

* * *

 
 
 

주1)
아기장수 설화 : 한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설화. 부모가 비범한 아기를 죽인다는 이야기로, 판본이 다양하나 대략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평민 집에 날개 달린 아기가 태어난다. 날개를 단 사람은 위대한 왕이나 장군이 된다는 소문이 돈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은 역적이라며 아기를 죽이라고 관군을 내려보낸다. 일족이 멸문할 처지가 되자 부모는 울며 스스로 아기를 죽인다. 아기는 자신을 팥과 콩, 조와 함께 바위 밑에 묻어달라고 했다. 왕의 장군과 병사들이 와서 바위를 들어보니 아기가 곡식을 군대로 키우고 있었다. 아기는 나라를 지킬 군대라 하소연했으나 장군은 듣지 않고 재차 아기를 죽인다. 그 후 용마(龍馬)가 주인을 모시러 나타났으나 모실 주인이 없어 슬피 울다 못에 빠져 죽는다.
일설에서는 그 후 나라에 왜란(倭亂)이 일어났고, 나라가 스스로를 지킬 장수를 이미 죽였기에 왜군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한다.
 
주2)
2026년은 60년만에 오는 불말(火馬)띠(병오년丙午年)다. 한국에는 백말띠(경오년庚午年) 여자가 남편을 잡아먹는다는 미신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불말띠 여자에게 같은 미신이 있어, 불말띠였던 1966년, 일본의 출산율이 25% 급감했다. 중국인은 이런 미신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단지 중국에는 여아를 버리면 다음 아이는 남아가 된다는 미신이 있어 산아제한 무렵 버려진 여아가 많았다고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