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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식/작품소식(국내)

이웃집 슈퍼 히어로 : 슈퍼히어로 단편선집 기획의 말(2015/03/20)

by boida 2023. 6. 9.
"이 기획에서 중심으로 삼은 것은 ‘처음부터 히어로 팬인’ 작가를 모으는 것이었다. 섭외문구는 의뢰서가 아니라 “당신은 히어로를 좋아하십니까?”하는 질문이었다."


기획의 말 :


“많은 영화인들이 보통 한국 호러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장르에 별 애정이 없는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라고 입을 모은다.

- 씨네 21 <고어 영화: 피의 미학> (필립 루이에 지음) 에 관한 기사 중에서
: 글 주성철 (2014-03-25)

   가지 계기가 있었다. 계기 하나는 ‘피망’을 주제로 한 ‘호연피망’이라는 작은 동인 단편집을 만든 것이었다. 우스운 주제였지만 피망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은 그 단편집은 꽤 귀여운 형태로 뽑혀 나왔다. 그 즈음에 “다음에는 슈퍼히어로 단편집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래전부터 모이기만 하면 슈퍼히어로 이야기에 밤을 새는 작가들이 있었으니까.

  애정을 담은 작품집을 만들고 싶었다. 장르소설을 써 오면서 종종 느꼈던 것이다. 우리가 애정을 갖고 만든 것들을 알아본다는 것을. 애정 없이 만든 것도 알아본다는 것을. 팬들이 작가가 그 장르에 애정이 있는지 없는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본다는 것을.

  그러다 판을 키울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단편집에 많이 참여해보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단편집 기획은 늘 갑작스럽게 떨어지고, 기획의 주제는 내 당면한 관심사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귀한 지면이라 애써 쓰곤 하지만, 늘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은 뒤로 밀리고 기회가 닿은 것이 앞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을 방법은 기존에 쓴 작품 중에서 추려서 모으는 것인데, 그때에는 또 주제며 소재가 중구난방이라 하나의 책으로서 통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획에서 중심으로 삼은 것은 이름 있는 작가, 혹은 ‘출간 기회가 있기에 쓰는’ 작가가 아니라 ‘처음부터 히어로 팬인’ 작가를 모으는 것이었다. 섭외문구는 의뢰서가 아니라 “당신은 히어로를 좋아하십니까?”하는 질문이었다.

  기획 기간을 1년으로 두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직업작가들은 대개 이미 몇 개의 의뢰를 진행하고 있고, 연 단위의 장기프로젝트도 따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이 기획으로 그들의 삶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수현 작가와 김수륜 작가는 기획 전반을 함께 해 주었다. 김이환 작가의 ‘초인은 지금’과 이서영 작가의 ‘노병들’은 전부터 눈여겨본 작품이었다. dcdc 작가는 트위터에서 “슈퍼히어로 단편을 쓰고 싶다”고 언급한 것을 기억해두고 있었다. 듀나 작가는 원더우먼 TV시리즈 에피소드 전체를 리뷰한 분이다. 잠본이님과 이규원님은 히어로의 열렬한 팬으로, 이분들 모르게 한국에서 히어로 단편집이 나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섭외했다. 좌백 작가와 진산 작가는 “강한 소설을 쓰는 분들이 와 주셨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섭외되었다. 그래서 ‘무협판 배트맨’이라는, 어느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작품을 싣게 된 것도 큰 기쁨이다.

  이 중에는 장편으로 발전한 단편도 있다. 김이환 작가의 「초인은 지금」은 이미 장편원고로 완성되어 있고, 김수륜 작가의 「소녀는 영웅을 선호한다」도 장편 계약이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한글로만 볼 수 있는 귀한 영웅들이 모여 있다. 즐겁게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획을 진행하는 동안, 참여하는 작가분들과 종종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그렇지 않은 작가분들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구상을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원고를 하나하나 받아보면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누구 하나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또한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다못해 “당연히 그게 영웅이잖아, 누가 생각해도…….”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다 다르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기획을 하는 내내 즐거웠다. 귀한 원고를 주신 모든 작가들께 감사드리며, 조금은 도발적일 수 있는 기획을 수락해주시고 좋은 책으로 묶어주신 황금가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